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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릭 생일을 기념하여 작성한 단편 글.
5살 릭과 사촌 형들인 시한&세한, 그리고 리세트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로 릭의 시야에 담긴 것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외가 사촌 둘, 두 번째로 시야에 담긴 것은 그 두 사촌의 양손에 한가득 들려있는 초코파이 무더기였다. 릭에게 손을 뻗으려던 시한은 제 품 안의 초코파이를 보고선 제 팔로 릭의 어깨를 쿡쿡 찔러냈다. 
 
 
" 준비 다 됐어 릭- 빨리 가자! "
" 나랑 시한이가 같이 가져왔어. 이 정도면 셋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걸? "
 
 
그 말을 끝으로 릭을 중심으로 시한, 세한이 릭의 양 옆으로 자리했다. 얼떨떨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 릭은 자신보다 조금 더 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왜 이 둘이 초코파이를 들고..? 라는 의문을 품었다. 잠시 의문을 곱씹던 찰나, 릭의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오늘은 10월 10일, 릭의 생일이자 외가 큰집에 머물며 살고 있던 릭의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며 시한과 세한이 약속한 날이기도 했다.
 
어른들이 큰집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시한과 세한은 릭과 놀고 있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리곤 몰래 가져온 초코파이 박스들을 꺼내 릭의 곁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릭의 시선을 받은 두 사촌은 씩씩한 웃음들을 지어 보이며 큰 집에서 가장 조용한 창고 방으로 향했다.
 
 
" 그런데 왜 창고 방으로 가는거야? "
" 으음 그러게? 더 넓은 방으로 가는 게 좋지 않아? "
 
 
방으로 사촌들을 이끄는 것은 릭의 몫이었다. 아무래도 날이 날인지라, 평소 소심한 성격과는 다르게 들뜬 발걸음으로 앞장서던 릭은 히히 웃으며 창고 방의 문을 열었다. 어른들이 허리를 숙여야만 들어올 수 있는 이 공간은 평소 잡다한 물건들을 넣어두는 곳이라 큰 집에서도 가장 작고 좁은 방이었다. 가장 안쪽에 있어 어둡고 서늘한 공간이기도 했지만-
 
 
" 하지만 이런 곳이어야 비밀스러운 느낌이 드는데? 어른들도 들어오기 어렵잖아! "
 
 
창고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빈 공간이 많았기에 어른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다른 안락한 공간도 많긴 많았지만, 이들의 평균 나이는 8살이다. 비밀스러운 공간에 흥미를 보이고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할 나이. 릭의 말에 납득한 두 사촌은 눈을 반짝이더니 숨죽여 웃고는 서둘러 창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비밀스러움에 흥미를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들이긴 했지만 이 셋의 경우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른들 몰래 은밀히, 비밀을 담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쌍둥이 중 동생인 시한은 바닥에 초코파이를 내려놓고선 주머니를 뒤적이며 성냥갑 하나를 꺼냈다.
 
 
" 역시 생일 파티에 촛불이 빠질 순 없지! "
" 요 앞방에 불을 켜놨어. 이러면 빛이 조금 새어 나가도 어른들이 눈치채긴 힘들 거야! "
 
 
아이들의 힘으로는 생일 케이크를 준비할 수 없었지만, 예전엔 초코파이를 생일 케이크 대신으로 사용하기도 했었다며 제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신나게 말하던 쌍둥이 중 형인 세한이 있었다. 케이크 대신 초코파이를 준비하고, 고깔모자 대신 종이를 오리고 붙여 손가락에 끼울 고깔모자를 준비했던 세한이었지만 생일 초의 대용은 쉽사리 생각할 수 없었다. 한참 끙끙 앓으며 고민하던 그때, 생일인데 제대로 된 것 하나쯤은 있어야지 않겠냐며 성냥갑 하나를 슬쩍한 시한이 있었다.
 
' 어른들 허락 없이 함부로 불장난하면 혼나는데... '
' 그럼 어른들 몰래 하면 돼! 내가 다 챙겨갈게! '
' 응! 시한이 말대로 비밀스럽게 하면 어른들도 모를걸? 우리가 열심히 준비할게, 약속이야! '
' 몰래..? .. 응! 기다리고 있을게! '
 
 
초코파이와 함께 챙겨온 플라스틱 접시 위로 포장을 깐 초코파이들이 하나씩 올려졌다. 생일 축하합니다~ 라는 작은 노래와 함께 초코파이 탑을 쌓으며 히히 웃는 세 아이의 얼굴에는 콩닥임과 함께 즐거운 웃음만이 남아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초코파이를 위에 올리고 큰 초 하나를 꽂자 제법 크고 먹음직스러운 초코파이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틱, 틱틱. 
케이크가 완성되었다면 이제 초를 꽂고 불을 붙일 차례만 남았다. 
성냥갑을 가져온 것은 자신이니 불을 붙이는 것도 자신이어야 한다며, 시한은 성냥을 꺼내 서툰 손짓으로 불을 붙이려 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불안함을 품은 릭이 시한을 바라보면, 그 옆에 있던 세한이 부드럽게 웃으며 릭의 손가락에 자신이 만든 작은 고깔모자들을 끼워주기 시작했다. 엉성하게 아버지가 하던 손짓을 떠올리던 시한이 성냥에 불을 붙이고, 그 희미한 불이 초에 넘어가 맺으면 천천히, 그리고 느릿하게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 우와아.. "
 
누군가의 탄성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세 아이는 참 오랜 시간 동안 그 불빛을 바라보았다. 즐거움에 꺄르륵 웃어버리던 아이들은 촛농이 떨어지자 그제야 바람을 불라며 릭을 보채는 것이었다. 볼을 부풀려 힘껏 후- 하는 바람과 함께 불을 끄면 시한과 세한의 작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 생일 축하해! '
' 생일 축하해 릭~ ' 
 
두 사람의 축하를 받은 릭은 뺨을 붉게 물들이며 히죽 웃었다. 잔뜩 신난 심장이 콩콩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릭은 고깔모자가 끼워진 두 손으로 두 사촌을 꼭 끌어안았다. 꺄르륵 웃는 소리가 곧바로 귓가에 들려왔다. 즐거워야 할 생일. 이유도 모른 채 외가에서 겉돌아야만 했던 다섯살 릭은 약속을 이뤄준 두 사촌과 함께 첫 생일 파티를 마쳤다.
 
 
 
 
 

 
 
 
 
톡, 토톡.
 
누군가 릭의 손등을 뭉근하게 누르며 보챈다. 감은 눈을 움찔하며 천천히 눈을 뜬 릭은 제 바로 앞에서 웅크려 있는 리세트를 바라보았다. 잠깐 졸았나? 시간을 보니 아직 밤도 아닌데 왜 낮잠을.. 생각을 다 끝내기도 전, 상황을 파악하려는 릭을 향해 리세트는 입을 열었다.
 
 
" 기억은 어때? "
" .. 아. "
 
 
리세트의 그 말 덕분에 릭은 잠시 흐려졌던 최근의 기억이 떠올랐다. 리세트가 직접 개발한 제품의 최종 승인을 위해 본인이 최종 테스트를 진행하던 때였다. 몽롱한 기억을 정리하고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릭은 제 머리에 부착되었던 장비들을 빼내며 무심코 제 손등을 확인했다. 방금 전 꿈속에서 확인했던 제 몸과는 확연히 다른 크기의 손등이 눈에 담기자 릭은 한숨과도 비슷한 깊은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꽤 괜찮네, 바로 승인하지. "
" 그럼 끝이네. 이제 남은 일은 제품의 경량화 작업과 사용자의 수면 유도 속도를 좀 더 빠르게 개편하는 일만.. .. "
" ... " 
" 표정이 왜 그래? "
" .. 아니, 테스트는 나쁘지 않았는데. "
 
 
왜 네가 그 기억을 골라낸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릭은 그 말과 함께 고개를 기울이는 리세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꿈속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던 위화감이 비로소 형태를 잡았다. 그 기억은 잘못된 것이었다.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사촌들과 함께 초코파이 케이크를 쌓았던 릭은 마지막 초코파이를 얹던 순간 외가 어른들과 제 가족사로 인해 사촌들과 곧바로 헤어지고야 말았었다. 
 
' ..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지. '
 
그러나 꿈속에서는 그런 방해공작 없이 행복하게 생일 파티를 마칠 수 있었다. 
.. 그것이 참 묘했다.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라는 것이 분명한데도 제 심장은 실제로 겪은 일인 것마냥 두근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릭은 한참 동안 추궁하는 눈빛을 쏘아 보낸 끝에, 리세트에게 답을 들을 수 있었다.
 
 
" .. 그거야 오늘이 네 생일이니까? "
" ? "
" 개발자 권한으로 내용을 조작한 거야. 내가 네게 받게 된 기억 중에서는 '행복한' 쪽으로 내용을 바꾸기 어려웠거든. 그나마 그날이 행복한 쪽으로 바꾸긴 가장 쉬웠어. 지금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나오지 않고, 그 기억 속의 사람들은 지금 잘 만나지도 않는 사람들이니 복잡하지 않잖아. "
" ...?; ??;; "
" .. 나름 생일이라 배려한 거야 릭. "
 
 
그 말을 끝으로 리세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릭이 누웠던 그 자리에 몸을 뉘었다. 방금 전 그 꿈속의 릭과 비슷한 체구의 의체를 사용하던 리세트는 제 소매를 달랑거리며 릭 뒤에 있는 디지털시계를 가리켰다. 리세트의 시선을 따라 시계를 바라본 릭은 '10월 10일, 00시 03분' 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다시금 리세트에게로 시선을 돌리면 삐뚜름한 미소를 짓는 얄궂은 꼬맹이만 눈에 담겼다. 그 웃음을 눈에 담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저를 잘 아는 악동이 건네준 생일선물 탓에 릭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토했다.
 
 
" .. 하하. "
 
릭 이그나시오, 28세.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을 받게 된 생일이었다.